요즘 부쩍 상담소로 걸려 오는 문의 전화가 많아졌다. 상담소에서 만나는 사람들(내담자)의 연령층도 아동, 청소년, 대학생, 사회초년생, 중장년층을 아우르며 폭넓어졌다. 자연스럽게 상담을 통해 접하게 되는 고민과 사연들도 더 다양해졌다. 지난 7월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이라는 심리상담 바우처 사업이 시작된 이후로 일어난 변화들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나의 여러 마음들을 만나게 된다.
가장 먼저 드는 마음은 반가움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상담소를 찾아준다는 것은 전문가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고 상담소 운영에도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그런 속물적인 반가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가치 있게 여기며 시간과 노력을 쏟는 분야에서 만나는 사람들만큼 소중한 인연도 없을 것 같다. 여전히 우리사회에는 심리상담을 받는 사람들은 뭔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편견이 존재하고, 스스로 상담소를 찾아온 내담자들은 그런 편견을 이겨내고 누구보다 용기 있고 주체적으로 사는 사람들일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좋다.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에게 심리상담의 문턱이 낮아진 것도 반가운 일이다. 교육기관을 중심으로 공공 상담이 활성화되고, 직원들에게 EAP 심리상담서비스를 지원하는 기업이 늘어나는 등 정신건강 관련 사회적 제도가 발전하고 있는 추세이다. 하지만, 이런 혜택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심리상담은 경제적 부담 등의 이유로 여전히 쉽게 접하기 어려운 영역일 수 있다. 실제로,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을 통해 내가 만나는 내담자들 중에는 취업준비생, 실직자, 비정규직 근로자, 자영업자, 가정주부 등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심리상담을 평생 처음으로 경험해 본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은 더 많은 사람들이 심리상담에 대한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필요할 때 언제든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원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다행스러운 마음도 있다. 심리상담의 문턱이 낮아진다는 것만으로 무조건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아직 우리나라에는 심리상담과 관련된 법률이 없어 전문적인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들이 전문가 행세를 하기도 한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그들을 찾아간 사람들이 상처를 입거나 심각한 피해를 입는 일도 일어난다. 심리상담에서는 자신의 내밀한 얘기를 하게 되고 때로는 취약한 부분이 드러날 수도 있는 만큼 윤리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에 참여하는 서비스 제공기관은 보건복지부가 정한 전문성의 기준을 충족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검증이 된 곳이다. 심리상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 곳에서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안전장치가 마련된 것 같아 안심이 된다.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도 든다. “상담을 더 연장할 수는 없나요?” “너무 짧아요” “언제쯤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요?” 마지막 상담이 끝날 때 내담자들로부터 종종 듣게 되는 말들이다. 예의상 하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여덟 번이라는 제한된 만남은 나에게도 아쉬움을 남길 때가 많다. 단기상담만으로도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는 사람도 있고, 때로는 더 장기적인 만남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 앞으로 이 사업이 진행되면서 지원정책이 더 정교해지고 세심하게 다듬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앞으로 더 많은 인연을 기대하며, 심리상담이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고 싶다. 필요한 조건이 갖춰지면 척박한 환경에서조차 새싹이 트듯, 인간도 누군가로부터 충분한 공감과 존중을 받으면 성장과 변화가 일어난다. 칼 로저스라는 유명한 상담자가 한 이야기이다. 나는 이렇게 훌륭한 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오랜 시간 이 말을 믿으며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심리상담은 문제 있는 사람들이 받는 것이 아니라, 지금보다 좀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은 사람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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